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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록

01. 고향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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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중반,

내가 가장 좋아하던 교수님의 수업 도중, '친구'에 대한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자네들은 고향 친구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평생 갈거라고 생각하나?

적어도 내 경험상으로는 아닌 것 같네.

고향 친구들과 같은 진로, 분야에서 근무한다면 모르겠지만 그게 아니면

그저 만날 때 늘하던 학창시절 이야기만 반복하다가 어느새 할 이야기가 없어지지.

그래서 나는 오히려 고향 친구들보다 교수, 학회 등 여기서 만난 친구들과 더 많은 말을 나누고 교감을 하는 것 같네"

 

 

어떻게 하다가 '친구'라는 주제로 이런 이야기가 나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런 말을 수강생들과 나눴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교수님이었기에 당시의 말씀을 상당히 신뢰했고, 대상을 나로 대입해 '내 고향 친구들도 그럴까?'라는 생각도 많이 했었다.

 

 

시간이 흘러 2년뒤, 나는 4학년이 되어 본격적인 취준생 반열에 들어섰다.

반기마다 대외활동하랴, 자격증 취득하랴, 인턴 지원하랴, 인적성 공부하랴, 자소서 갈고 닦고 첨삭하랴, 신문 스크랩하랴, 취업 스터디하랴. 정말 바쁘게 시간을 보냈고, 당연히 고향에는 뜸하게 갔었다.

 

 

그러다 한번은 명절이라 고향에 내려갔었는데 가장 친한 반 친구들과 모임을 가졌었다.

그런데 이 친구들은 직업군인이나, 옷 가게 스태프, 핸드폰 판매사원 등 나처럼 대학을 가기보다는 일찍 사회생활을 하며 돈을 벌었던 탓에 친구들끼리 같이 매일 pc게임도 즐기고 휴가시즌에는 같이 계곡도 놀러가고, 이러다보니 취업준비만 한 나와는 이야기가 잘 통하지 않았었다. 그니까 한마디로 재미가 없었다. 나도 워낙 활발한 성격이고 친구들과도 매우 친했고 친구들도 대체적으로 매우 재밌는 성격이었기 때문에 그때 당시 상당히 큰 충격이었다. 아무튼 그때의 충격을 뒤로 하고 다시 학교 생활로 돌아왔다. 

 

 

얼마 안있어 같은 취준생 또래 동갑 친구 (사총사라고 있었음)들과 학교 정자에서 맥주에 치킨을 사서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는데, 뭐 사실 이렇게는 1~2주에 한번은 맥주를 먹곤했는데, 고향 친구들을 만났을 때보다 너무 재밌던 거다.. 그냥 이 친구들도 취준생이다 보니 서로 뭐 준비한 것에 대해 의견도 나누고 뭐 어디를 지원할거니, 인적성 공부는 잘되가니, 어떤 기업 자소서 항목 진짜 빡세지 않느냐니 정말 2시간이 20분처럼 느껴질 정도로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그리고 취준생으로서 뭔가 진짜 힐링받는 듯한 느낌?

 

 

동시에 그때 내가 좋아하던 교수님의 '친구' 발언이 생각났다.

'아.. 그때 교수님께서 이런거 때문에 그때 그 말씀을 하셨던 건가?' 

나도 어느새 10년이 넘은 고향 친구들보다 오히려 대학교에서 취업으로 친해진 친구들이 더 편하고 좋아졌던거다.

 

 

아무튼 교수님의 말씀을 깨우치고 그게 맞는 건 줄 알았다. 

고향 친구는 고향 친구구나.

하지만 30대에 진입한 지금 이제 생각해보니 틀린 것 같다.

 

 

사실 이번에 대기업 퇴사를 하고 모처럼 고향에 내려가서 약 2주정도 쉬다가 왔는데 오래만에 고향친구들과 20대 초반처럼 부어라 마셔라 술을 정말 많이 마셨고 너무 즐거웠다. 그러면서 고등학교 이야기부터 20살, 군대가기전과 군대 전역 후 친구들과 에피소드를 말하고 하는데 너무 웃겨서 배가 아플정도였고 정말 근래들어 모처럼 너무 재밌었다. 

 

 

그때 교수님의 말처럼 고향 친구들을 만나면 추억 회상밖에 더 하느냐는 말은 맞다.

하지만 그 추억 회상 자체만으로도 너무 재밌고 즐겁더라. 그 순간만큼은 퇴사하고 뭐하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지? 이런 미래에 대한 근심 걱정, 불안 따위는 잊어버리고 너무나도 즐거웠던 고등학생, 20살 초반으로 돌아갈 수 있었고 친구들과 함께 웃고 즐겼다. 고향 친구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나이가 드니 친구들도 명절에 한번씩 만나고, 하나둘씩 결혼을 하니 '결혼'이라는 공통 주제로 교감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더라. 즉 자신의 직무, 분야와 관련이 없다할지라도 이야기할거리는 무궁무진하다는 것이다. 이번에 고향에 내려가서 친구들과 모처럼 생각없이 마시고 먹고 너무 즐거웠던 경험에 이 이야기를 꼭 쓰고 싶었다. 

 

 

글쎄... 뭐 고등학생 때 워낙 재밌는 친구들과 만나서 그때의 시절이 재밌고 안 재밌고는 케바케라고 생각은 하지만, 30대가 되어서 고등학생 시절과 20대 초중반의 시절을 친구들과 교감하는 것만큼은 즐거운 회상은 또 없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고향에 쉬러 가면서 고향 친구에 대한 좋은 배움을 하고와서 더 뜻깊은 것 같다.

다음 번엔 대학 친구, 결혼, 대기업 vs 공기업 vs 9급공무원에 대해서도 한번 내 생각을 써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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